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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쇠뇌

쇠뇌

활을 사람의 힘으로 당기지 않고 고정틀에 물리고 화살을 올려 발사장치를 통해 쏘는 기계식 활.

흔히 석궁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석궁은 오역이나 사실상 이 뜻으로 고정되어 버렸다. 이에 대해서는 석궁 문서 참고. 석궁 문서에서 일반적인 사항을, 이 문서에서는 한국사의 전통 무기를 다룬다.

한국사에서 가장 오래된 쇠뇌 관련 유물은 청동기 시대 출토된 단발식 쇠뇌의 방아틀 뭉치이다. 이 외에 고분벽화의 그림도 남아 있다.

신라 시대에는 구진천이 개발한, 천 걸음이나 화살이 날아가는 쇠뇌인 천보노(千步弩)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신라는 아예 쇠뇌만 다루는 전문부대인 노당(弩幢)을 따로 만들 정도였다. 662년에 평양을 포위했다가 군량이 끊어진 소정방에게 군량을 전해주고 오던 김유신이 도중에 호로하(임진강)에서 고구려군의 기습을 받았을 때 수많은 쇠뇌를 한 번에 쏘는 전법으로 고구려군을 거꾸로 궤멸시키는 전과를 세웠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남아있다. 신당서(新唐書)에는 신라가 관문에 항상 노사(弩士) 수천 명을 주둔시켜 지킨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나라는 노를 신라를 대표하는 무기로 봤던 것이다.

그래서 당나라에서는 천보노를 만드는 장인 구진천을 끌고 갔다는 기록도 있다. 당시 신라는 고구려 멸망 후 나당전쟁 개전을 몰래 준비하는 중이었기에 당나라를 안심시키기 위해 순순히 따랐다. 다만 구진천은 일부러 재료가 중국 것은 안 좋다느니, 신라에서 배에 실어서 갖고 온 재료가 습기가 차서 못 쓴다느니 핑계를 대면서 당고종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끝내 제대로 된 천보노를 만들지 않았다. 처음 만든 것은 30보 남짓, 신라에서 목재를 가져와 만든 것은 60보 남짓 날아갔다고.

고려시대에도 수질노, 수질구궁노, 팔우노 등 다양한 쇠뇌들을 제작해서 사용했다. 북계에 주둔했던 주진군 중에는 쇠뇌를 다루는 노병이 좌군에 편성되어 주둔했으며 별무반 편성 당시 쇠뇌를 다루는 정노군이란 부대를 신설하기도 했다. 예종이 정예부대인 정노반을 사열했다는 기록이 있는 등 고려시대에도 쇠뇌는 널리 사용되었다. 하지만 원간섭기를 거치면서 쇠뇌 제조법이 실전되었고, 조선 초기에 들어서면서 쇠뇌를 만들 줄 아는 이가 없어 왕궁에 있는 도자기에 그려진 그림을 참조해서 쇠뇌를 만드는 지경까지 갔었다고 한다.

무기/쇠뇌.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3/09/22 02:42 저자 user